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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45만원서 연봉 7000만원으로 남한생활 17년 탈북자 "성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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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916회 작성일 11-05-2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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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45만원서 연봉 7000만원으로 남한생활 17년 탈북자 "성공했죠"

입력 : 2011.05.21 03:01 / 수정 : 2011.05.21 16:45

단숨에 돈 벌겠다는 망상, 차별받는다는 자격지심도 과감하게 버렸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주변에서 '너는 기껏 남한 와서 한다는 게 용접이냐. 이러려고 탈북했냐'는 말들을 했죠. 개의치 않고 묵묵히 일만 했습니다."

한 탈북자가 한국에 정착한 뒤 17년간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수기를 본지에 보내왔다. 얼굴과 이름을 밝히기 꺼린 엄모(54)씨는 "반복되는 실패를 극복하고, 용접공으로 시작해 대형 건설회사 과장이 된 제 이야기가 2만여 탈북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수기를 보낸다"고 했다.

엄씨는 1994년 러시아 벌목장에서 일하다 '남한을 추종했다'는 죄명으로 북한 보위부에 체포됐지만, 호송열차 화장실 유리창을 깨고 탈출했다.

 

탈북자 엄모(54)씨가 1994년 국내에 입국한 직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받은 질문지 뒷장에 쓴‘벌목공의 애환’이라는 시. 엄씨는“정착에 힘겨워하고 있는 탈북자들이 내 얘기를 듣고 힘을 냈으면 한다”고 했다. /김성민 기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1년간 지내며 용접 3급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당시 함께 교육받았던 8명의 탈북자들은 정부 주선으로 대기업 사무직 일자리를 얻었지만, 그는 대우건설강원도 문막 현장 용접공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남한에서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일하다 잠시 쉬게 되면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게 됐고, 대부분의 탈북자가 그렇듯 '어떻게 하면 단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만 궁리했다"고 했다.

회사 주선으로 결혼도 했지만 가정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그는 "문화적 차이가 엄청나 갈등이 심했다. 아내가 살갑게 묻는 것도 감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힘들게 남한에 왔는데 나를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고 했다.

직장과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다. 한 달 용돈을 하루 만에 쓰고, 신용카드를 만들어 유흥비를 충당했다. 그는 수기에 "아내 몰래 신용카드를 마구 썼고 2년 만에 5000만원의 카드빚이 생겼다"며 "아내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고 새롭게 살기로 결심했다"고 적었다.

마음을 잡고 7년간 건설현장에서 묵묵히 용접을 했다.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밤에는 정보처리기능사와 가스안전관리자 자격증 공부를 했다. "북에서 30여년간 세뇌돼 시키는 일만 하던 내가 미래를 준비하며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익숙지 않아 힘들었다"며 "단숨에 돈을 벌겠다는 망상을 버리고 남한 사람들이 나를 차별한다는 자격지심을 버리니 세상이 달라졌다"고 했다. 엄씨의 노력은 회사의 인정을 받았고, 탈북자 용접공이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났다. 2년 만에 대리로 승진했고, 다시 4년이 지나 과장으로 진급했다. 한 달 45만원을 받던 용접공은 지금 연봉 7000만원을 받는다. 그는 "옛날 내가 용접공으로 일할 때 '체면을 생각하라'며 비아냥거렸던 탈북자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퇴직했다"며 "한국에서는 인내하며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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