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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경찰 외사요원 시험 도전… 베트남 출신 구앤 티 킴 홍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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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992회 작성일 10-09-0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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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경찰 외사요원 시험 도전… 베트남 출신 구앤 티 킴 홍氏

"결혼이주 여성들의 '지팡이' 되고 싶어요"
  • 안준용

조선일보  발행일 : 2010.08.23 / 사회 A11 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 홍익동 외국인근로자센터 지하 1층 찻집에 베트남 여성 A(23)씨가 들어섰다. 같은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인 구앤 티 킴 홍(Nguyen Thi Kim Huong·37)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A씨는 "시부모 모시고 경북 경산에서 농사짓다 남편의 구타 때문에 4시간 버스 타고 서울로 왔다"고 구앤씨에게 하소연했다. 구앤씨는 A씨 두 손을 꼭 잡고 "꿈을 품고 한국 온 것 아니냐. 집에서도 난리 났을 테니 먼저 전화부터 해보라"고 했다. 구앤씨는 20여분 동안 A씨와 상담했다. 상담이 끝나자 A씨는 "베트남 친언니 만난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구앤씨는 "A씨가 남편에게 전화해 화해를 해보겠다고 한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구앤씨는 3만여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들의 '대모(代母)'이자 '해결사'로 통한다. 1994년 베트남에서 남편 안원준(당시 35세)씨를 만나 한국으로 건너온 지 16년이 됐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통역 일을 하며 틈틈이 결혼이주 여성들의 고충을 들어준다. 결혼이주 여성들 사이에서 "무서운 남편도 잘 설득해 준다"는 소문이 퍼지자 캄보디아·미얀마 여성들도 상담을 청한다. 구앤씨는 "일주일에 10명 이상 만난다"며 "새벽 3시에 휴대전화로 상담을 청해온 적도 있다"고 했다.

구앤씨는 월남전이 끝나던 1973년 한국군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구앤씨가 태어나자마자 한마디 말도 없이 베트남을 떠났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구앤씨는 지난 1994년 베트남 한 식당에서 일하다 남편 안씨를 만났다. 구앤씨가 한국으로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눈물로 말렸다. 하지만 구앤씨는 "아버지 조국에서 내 힘으로 떳떳하게 성공하고 싶다"며 기어이 한국 땅을 밟았다.

그의 한국 생활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울산에서 작은 인쇄소를 하던 남편은 1억원 넘는 빚을 지고 있었다. 부부는 지하 창고를 개조한 5평짜리 단칸방에 신접살림을 꾸렸다. 1996년 딸을 낳고 국적도 취득했지만 생활고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매일 밤 눈물을 흘리면서도 어머니를 떠올리며 악착같이 버텼다. 1998년 남편의 인쇄소는 문을 닫았고 구앤씨는 식당 일을 하며 한푼씩 모은 돈으로 남은 빚을 모두 갚았다. 2005년에는 울산에 104㎡(약 31평)짜리 아파트도 한 채 장만했다. 남편도 처음 집을 갖게 되던 날 "미안하고 고맙다"며 구앤씨 손을 꼭 잡았다. 2007년 구앤씨는 "더 큰 세상에서 일해보고 싶다"며 서울로 올라왔다.

구앤씨의 성공을 지켜본 결혼이주 여성들은 그에게 상담을 청해오기 시작했다. 구앤씨는 "다 친언니 같고 친동생 같아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 2002년 겨울에는 30대 베트남 여성이 부부싸움 뒤 "남편이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며 울면서 찾아왔다. 구앤씨는 그를 한 달 동안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했다. 올해 초에는 자신이 일하는 변호사 사무실에 부탁해 형편이 어려운 20대 캄보디아 신부가 영주권을 무료로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왔다. 부부싸움 현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서울 광진구 자양동까지 찾아가 부부싸움을 말릴 때는 흥분한 한국인 남편이 "남의 부부싸움에 끼어든다"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구앤씨는 "나는 누구 편도 아니다"며 30분 만에 한국인 남편을 설득했다. 그는 "욕을 들을 때는 무섭고 기분 나빴지만 한국인들은 정이 많기 때문에 설득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고 했다. 이렇게 구앤씨가 구제한 부부는 100쌍이 넘는다.

최근 서울시는 구앤씨에게 결혼이주 여성들을 위한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서울 성동경찰서 외사계는 베트남 국적의 피의자가 입건되면 통역 잘하는 구앤씨부터 찾는다. 지난해 12월 구앤씨는 강력계 형사들과 경기도 광주로 내려가 같은 베트남인을 감금하고 금품을 요구한 5인조 납치범 검거도 도왔다.

아버지의 조국에서 성공신화를 쓰는 구앤씨는 올해 또 하나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오는 9월 1일 전형이 시작되는 경찰공무원 외사요원 특별채용 시험에 응시하는 것이다. 구앤씨는 "결혼이주 여성, 불법체류자들을 잘 아는 만큼 그들의 '지팡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경찰이 되면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아버지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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