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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당신은 이들의 이웃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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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36회 작성일 22-03-2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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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류 준비도, ‘일이 없어지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안 해도 돼요. 제대로 살아야겠단 책임감도 생겼어요. 네팔 사람 받아줬더니 사고쳤단 말 나오면 안 되잖아요.”(웃음)

좁은 문, 누군가에겐 더 좁다

고학력에 다재다능함, 대중적 인기까지 갖춘 수잔도 한국 정주에 이르기까지 아찔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어야 했다. 다른 이주민들은 오죽할까. 이주노동자의 전형인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에겐 더 좁은 문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시케오(30)는 동료 이주노동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지난해 봄 비전문취업(E-9) 비자에서 외국인근로자숙련공(E-7-4) 비자로 갈아타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5년 이상 비전문취업 비자로 일한 이주민이 숙련도 등 요건을 충족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장기 체류 비자(2년마다 갱신). 2012년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와 꼬박 9년 만이다. 그는 인천의 금속 공장을 거쳐 2018년부터 충북 음성에서 플라스틱 사출기술자로 일한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캄보디아인 아내와 2017년 가정도 꾸렸다. “비자 신청 서류가 복잡하고 저희 사장님도 경험이 없어 어려웠어요. 이 회사에서 일한 외국 사람이 많았는데 E-7으로 간 건 제가 처음이에요.”


케오는 계속 한국에서 일하며 머물고 싶어하지만 목표는 영주권이 아닌 거주(F-2) 비자다. E-7 비자로 한국에 5년 이상 거주하고 계좌에 3000만원 이상 잔액이 있어야 한다. 한국어능력시험과 사회통합프로그램(4·4단계 이상)도 필요하다. “영주권까진 어려워요. F-5 받으려면 대학까지 다녀야 하는데 저는 중학교 2학년까지만 공부했거든요.” GNI 2배인 소득 기준도 현재로선 넘사벽이다.

흐릿한 비자 지도

한국의 비자·체류 관리 시스템은 이주민이 거의 없던 1960년대 만들어진 틀에 새 비자를 덧대는 방식으로 흘러왔다. 대분류로 36(A~H), 세세하게 나누면 250여개에 달한다. 비자 종류가 복잡해지면서 이주민들은 적합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법무부 웹사이트 하이코리아는 만족도가 떨어진다. 이상욱 행정사는 지도가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 있는 상황에 비유했다. 잘못된 정보를 공유하다 문제를 키우거나, 자신도 모르게 출입국관리법을 어기고 미등록 상태가 되기도 한다.


출입국 행정을 담당하는 법무부는 정부 부처 중 비공개 내부 규정이 가장 많다. ‘국가 안보국경 관리같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지만, 이런 불투명성이 혼란을 키운다.


출입국 20년 근무 경력의 행정사 A씨는 “(비자 발급 등에 대한) 불허 기준은 명분이 분명하지 않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004년쯤 한국에서 20년 넘게 봉사한 수녀가 영주권을 신청했어요. 거절 명분이 없었는데 당시는 대만 화교를 빼면 요건 안 따지고 거의 불허하던 시절이라 그냥 이유 없이 불허했습니다.”

수시로 바뀌는 체류 자격매뉴얼정주까지 산 넘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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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 규정, 자주 바뀌기로 악명

담당자 따라 체류기간 달라지기도

권위적·비일관적 대응 고질적 문제


60년대 만든 비자 시스템 덧대기만

저숙련 노동자 정주화문턱 제거 등

정부, 개방적 이민 정책 마련하고

한국 사회 구성원에게 이해시켜야


한국의 체류관리 정책이 다양한 이주민의 삶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인이 밟는 전형적 경로가 비자 발급·연장·변경 등 절차에 그대로 녹아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들의 이웃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까

 

지난해 8월 전북대를 졸업한 지오바나 브라보말로(25·에콰도르·사진)가 그 전형에서 벗어난 사례다. 사회학 전공자로 인권에 관심이 많은 그는 현재 NGO 활동 중이지만 비자는 D-10(구직)이다. 학사 학위 이상 외국인이 구직 활동 시 최대 2년까지 받는 비자로 구직·인턴 활동만 허용된다. “대학 생활은 전환의 시기예요. 졸업 후 공부를 더 할지, 직장을 찾을지 고민이 필요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요.” 한국 정부가 유학생 유치에 골몰할 뿐 졸업 후 삶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비자가 만료되는 올가을 유럽으로 떠난다. ‘브리징(연계) 비자로 과도기 중 체류를 보장하는 호주였다면 그의 선택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출입국 규정은 자주 변경되기로도 악명 높다. 하이코리아에는 사증·체류 자격 매뉴얼이 며칠 단위로 업데이트된다. 분량만 500쪽에 달하는데 한국어판만 있다. 출입국의 권위적이고 일관성 없는 대응도 이주민들을 떨게 한다. 결혼이민(F-6)자이자 대학원생인 B(32·일본)출입국에 갈 때면 늘 긴장한다. 같은 조건이라도 담당자에 따라 받는 체류기간도 달라진다고 했다. 피부색이나 출신국가, 체류자격에 따라 공무원들의 친절도가 달라지는 것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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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이민국가의 문


비자 체계와 체류관리 시스템은 이주민들이 겪는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깝다. 외국인 유입에 대한 정부의 철학과 정책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국만 체류 자격이 복잡하고 절차가 까다로운 것도 아니다. 이민정책연구원 최서리 박사는 핵심은 이주민을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수용할지 여부에 대한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한때 이민 국가임을 천명한 적이 있다. 2008년 제1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에 적극적 이민 허용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비전이 담겼다. 앞서 2006년엔 결혼이주여성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정책이 시작됐다. 중국과 구소련 지역 동포들을 위한 방문취업(H-2) 비자가 도입된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20132, 20183차 기본계획을 거치며 이민 허용국민이 공감하는 질서 있는 개방이 대체했다. 이주민에 대한 여론 악화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우수인재에 대한 적극적 영입이다.


그런데 우수인재들은 한국 생활에 만족할까. 대학 교수 C씨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한국행을 택했다. 착각이었다. 장애인복지법은 재외동포(F-4), 영주권자(F-5), 결혼이민자(F-6), 난민인정자(F-2)만을 장애인 등록대상으로 하고 있어 그의 아이는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우수인재가 혼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우수인재를 받겠다면서 자녀는 지원하지 않으면 누가 오겠어요?”(이주와 인권연구소 김사강 연구위원)


외국인 투자자도 정부가 반기는 대상이다. D-8(투자) 비자는 국내 투자 1억원 이상 등 조건을 충족하면 받을 수 있다. D-8-4(기술창업) 비자 소지자인 웨이옌 툰(22·미얀마)은 국내 진출 해외 기업을 상대로 한 컨설팅 업체를 운영한다.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 주관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에 입상, 정부 투자를 받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역시 불안을 느낀다. 영주권을 받으려면 비자가 만료되는 3년 뒤 매출 3억원과 한국인 직원 2명 풀타임 고용등의 조건을 맞춰야 한다. 일정 소득을 내지 못하면 한국에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19로 외국인 자영업자들은 체류자격마저 흔들리는 이중고를 겪는다.


저숙련 노동자의 정주화는 이주민 정책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노동자의 단기순환 원칙을 통해 이들의 정착을 막아왔다. 노동력은 활용하되 장기체류에 따른 각종 사회적 부담은 피하려는 의도였다.


2017년 숙련기능 외국인 점수(E-7-4) 비자 신설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받았다. 까다롭긴 해도 저숙련 노동자도 노력하면 장기 거주(F-2)할 수 있는 경로를 열어둔 것이다. 지난해 1250명이 E-7-4 비자를 받았고, 2025년까지 연간 쿼터가 2000명으로 늘어난다. 법무부는 지난해 12농어업 이민비자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계절근로자 등이 농어업 분야에서 5년간 일하면 정주 가능한 비자를 준다는 게 골자다.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 정부가 저숙련 노동자를 이민 형태로 받아들이겠다고 한 첫 공식 선언이자 개방적 이민정책으로의 첫 신호라고 했다. 그러나 정책 선회라기보다는 일손 부족호소 민원에 부응한 성격이 아직 강해 보인다.


하지만 캄보디아인 케오가 운 좋게 거주(F-2) 비자를 받는다 해도 수잔처럼 취업이 자유로워지진 않는다. 같은 거주비자라도 E-7-4에서 넘어온 경우 직종 변경이 제한된다. 그는 영주권을 받지 않는 한 사출 성형 기술자로만 일해야 한다. 그가 가진 또 다른 가능성과 잠재력이 발휘될 기회는 없다.


비자라는 이데올로기


영국의 경제학자 폴 콜리어는 <엑소더스>에서 이주가 좋은가 나쁜가는 틀린 질문이라며 중요한 것은 이상적인 정도라고 했다. 그럼 현재 한국으로의 이주 행렬은 이상적인 수준인가. 전문가들은 쉬이 답을 내리지 못한다. 이주민 유입의 적정 규모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첫발도 떼지 못했다.


다만 한국이 이민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한국은 아시아의 주요 이주 목적국이 된 지 오래다. 2017년 생산가능인구 감소도 시작됐다. 정기선 전 이민정책연구원장은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면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중요한 것은 개방적 이민 정책의 필요성을 한국 사회 구성원이 이해하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비자·체류관리 정책도 손질이 필요하다. 한국행정연구원 정동재 연구위원은 제도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투명성을 높이고, 이주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선주민과 공존할 수 있도록 통합의 가치를 시스템에 녹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비자 취득 문턱을 높인 채 고급 인력만 골라 받으려는 정책이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많았다. “받고 싶은 사람만 쏙쏙 골라 받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최계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것이다. 김연홍 한국행정학회 이사는 조건을 갖춘 저숙련 노동자의 정주 가능성을 높이는 희망 사다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 E-9 노동자의 E-7-4 전환 비율(0.5%)은 턱없이 낮고 수요 조사도 주먹구구인 게 현실이라며 직종별 부족 인력 리스트를 작성하고 전환 비율을 인구 대비 이주민 비율인 5%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등록 체류의 유인을 줄이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에게 공적개발원조(ODA) 차원의 취·창업 지원을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김철효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주를 밸브처럼 열었다 잠글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큰 착각이라며 비자 체계는 이주·이동 패턴의 실제 현상을 못 따라가는 이데올로기에 가깝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주민 정책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해묵은 이주민 건보 무임승차론을 꺼내 혐오에 기름을 부었다. ‘이민처()’ 설립 논의는 오래도록 답보상태다.


‘K’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


지난 6~9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국제방산전시회(WDS) 한국관에는 ‘K방산대표 업체가 총출동했다. 회사를 대표해 날아간 이곳에서 수잔은 바이어들을 상대로 자사 낙하산 제품을 홍보했다. 베트남·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한 땀 한 땀 재봉한 메이드 인 코리아낙하산은 네팔 사람 수잔을 통해 세계로 팔려나갔다. 과연 수잔이 다니는 회사만 그런 것일까.


당신은 이들의 이웃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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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배문규·김원진·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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