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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당신은 이들의 이웃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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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31회 작성일 22-03-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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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의 한국 (1) 서바이벌 비자게임

당신은 이들의 이웃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까

최민지 기자

2022.03.23 06: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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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분증 받기까지 11년 유명 방송인이자 회사원인 네팔 출신 수잔 샤키야가 지난 1일 서울 송파구의 집에서 한국 체류 11년 만에 발급받은 영주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가장 안정적인 체류자격이자 한국 정주를 원하는 이주민들에겐 이기도 한 영주증을 얻기까지 수잔도 여러 차례 아찔한 고비를 넘어야 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 215만명

2024년엔 전체 인구의 5% 이상

이주민 정책 재점검 필요한 때


당신의 이웃은 누구인가. 철수와 영희뿐인가. 당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찰스응우옌이 새로 이웃이 됐음을 알고 있는가.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귀화자 포함) 수는 215만명(2020년 기준), 전체의 4.1%. 경기 안산(13.1%)·시흥(12.4%)과 충북 음성(14.6%) 등에선 10%를 넘어섰다. 40만명의 미등록 외국인을 포함하면 대구 인구(240만명)를 웃돈다. 코로나19 사태로 체류 외국인 수는 다소 줄었지만 전문가들은 2024년이면 외국인 주민 수가 5%를 넘어설 것으로 본다.


이주민들은 한국의 뿌리산업과 돌봄노동을 떠받쳐 왔다. 다양한 배경의 이주민들이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있고 이미 이들 없이 한국 사회는 작동하기 어렵게 됐다. 코로나19로 외국인 유입이 줄면서 이들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인식은 이주민 유입이 본격화한 199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저성장 탓에 이주민을 향한 시선은 더 싸늘해졌고, 다양한 문화정체성을 이유로 한 타자화도 여전하다. 한국이 독일·중동으로 노동자를 보냈고, 재외동포가 800만명에 이르는 이주 국가임을 되돌아보는 이는 적다. ‘외국인 비중이 5%이면 다문화사회라는 출처불명의 정보가 통용되는 것도 한국 사회의 얕은 인식을 드러낸다.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과 2006년 다문화사회 선언으로 대표되는 이주민 정책은 ‘5% 시대를 앞둔 지금도 유효한가.

 

한국은 2020년 인구 감소가 시작됐다. 전환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라도 이주민 정책은 재점검이 필요하다. 그들을 노동력으로만 간주해 짜온 정책에 문제는 없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정현종 방문객’)이기 때문이다.

 

2022년 세계는 불안정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최대 500만명의 난민이 발생할 전망이다. 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은 기후 난민도 빠르게 늘고 있다. 국제 이주 행렬을 유발하는 부국과 빈국 간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한국은 아시아의 주요 이주 희망국이 된 지 오래다. ‘K웨이브로 매력 국가가 된 한국을 향해 오늘도 많은 청년들이 짐을 싼다. 개방경제로 성장해온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삶의 공간을 내어줄 채비가 되어 있는가.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은 지난 12월부터 이주민 150여명을 만나 인구 5%에 달하는 그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심층 취재했다. 그들은 체류자격에 불안해했으며, 강도 높은 노동에 건강을 잃거나 낯선 땅에서 죽음을 맞기도 한다. 성년이 된 이주민 2세들의 고민, 국적과 젠더의 이중 사슬에 엮인 이주여성들의 고단한 삶도 들여다봤다. 그들은 한국 사회의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는 아웃사이더이자 날카로운 관찰자였다.


이주민으로 한국에 산다는 건 살아남기에 가깝다


방송으로 유명해진 네팔인 수잔도

‘F-5’ 영주자격 얻는 데 11년 걸려

학력·전공 연관성·소득·연령 등

조건 까다로워 중도 포기자 많아


NGO 활동 에콰도르인 지오바나

한국 정부, 유학생 유치에만 골몰

졸업 후 삶에 대한 배려는 부족


서른네 살 청년 수잔 샤키야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네팔 사람이다. 2015년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유창한 한국어로 토론하는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을 통해 얼굴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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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은 9년차 회사원이다. 서울의 한 방산업체에서 해외 마케팅을 맡고 있다. 종종 방송에 얼굴을 비추지만 요즘은 통·번역 일이 더 많다. 그는 한국 정부가 인증한 전문통역인이다.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집에서 그가 보여준 여권에는 한국 생활 12년간의 궤적이 담겨 있었다. “저희는 뭘 하더라도 비자가 필요해요. 이건 영주증이에요. 체류 자격에 영주(F-5)’라고 찍혀 있죠. 이걸 받기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D-4(어학연수) 비자로 시작해 D-2(유학) 비자, E-7(취업) 비자로 갔고요. 그다음 F-2(거주) 비자 받고 F-5(영주)까지 왔어요.”


체류 자격’, 이주민에게는 가장 무거운 단어다. 한국에서 얼마나 머물며 어떤 활동을 할 수 있고, 어느 수준의 사회안전망이 적용되는지가 체류 자격에 따라 정해진다. 대중에게 익숙한 방송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 역시 12년간 몇차례 체류자격을 바꿔야 했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인들에겐 관심 밖의 일이지만 한국의 5%’에겐 삶의 등급이 걸린 문제다. 거리에서 드물지 않게 마주치는 외국인들은 어떤 비자, 체류자격을 갖고 있을까. 빈번히 바뀌는 규정과 낮은 예측 가능성, 까다로운 조건 탓에 한국 정주를 희망하는 이주민이 종착지까지 가는 길은 험난한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D-4(어학연수)

수잔이 네팔에서 대학에 다니던 2008년은 239년 만에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던 격동기였다. 레짐체인지의 혼란에 학교가 문을 닫았고, 1년간 등교한 날이 3~4개월도 안 됐다. 부모들은 자녀를 해외로 보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일했던 아버지 지인과 매년 산을 타러 네팔에 오던 한국인들의 권유로 수잔도 한국행을 결심했다.


‘3끝에 어학연수(D-4) 비자를 받아 2010년 봄 한국 땅을 밟았다. 1년간 단국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한 뒤 이듬해 같은 대학 도시계획부동산학과에 입학했다. 네팔에서 전공하던 경영학에서 방향을 바꾼 이유가 있었다. “높고 깔끔한 건물, 칼같이 시간 맞춰 오는 지하철에 놀랐어요. 한국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발전했다는 게 신기했죠. 카트만두에도 도시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D-2(유학)

11학번 신입생이 되면서 D-2(유학)로 체류자격을 바꿨다. 4년간 코피 날 만큼열심히 산 덕에 평점 4.1점으로 성적 최우수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피곤한 나날이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깃집 서빙부터 배달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출입국관리법상 취업활동은 E(취업비자)계열과 F-2(거주) 같은 F계열 비자 등으로 제한된다. 유학비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를 받아야 한다. 여권에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 스티커가 하나둘 붙기 시작했다.


E-7(특정활동)

졸업을 앞둔 2014년 취업에 성공했다. 군용 낙하산을 만드는 방산업체의 인턴이 된 것이다. 2012년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선 한국인 그룹을 가이드했는데, 성실한 수잔을 눈여겨본 한 등반객이 귀국 후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취업난을 넘어선 그에게 또 다른 비자 문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취업비자로 불리는 E-7(특정활동) 비자는 대학 졸업 후 국내 기업에 취직한 외국인이 한국에 머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다. 문제는 전공과의 관련성이었다. 2015년 다소 완화됐지만, 당시 E-7 비자를 받으려면 전공 관련 직종에 취업해야 했다. 당국은 그의 전공이 방산업체와 맞지 않는다고 봤다. “처음엔 비자를 안 준다고 했어요. 사장님이 직접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이 친구 없으면 큰일난다고 설득해 겨우 받았죠.”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국내 45개 대학 외국인유학생 취업 현황(2009)에 따르면 매년 졸업생 1만여명 중 국내 취업자는 100명에 못미친다. 유학생 99%가 한국에서 취업을 하지 못해 돌아간다는 뜻이다.

20151<비정상회담> 출연은 수잔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5년간 갈고닦은 그의 말솜씨와 성실한 태도가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고정 출연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비자와 연계된 직장 외 취업 활동은 금지돼 있다. 첫 출연 때 받은 활동허가서는 일회용이라 다시 허가를 받아야 했다. 당시 출입국 반응이 기억에 생생하다. “담당자가 회사냐, 연예인이냐하나를 택하래요. 연예인 할 거면 E-6(예술흥행) 비자로 바꾸고 회사를 관두라면서요.” 방송사 PD, 회사 사장과 함께 출입국사무소를 찾아 설득한 지 이틀 만에 허가가 떨어졌다. 그를 찾는 곳이 늘면서 출입국사무소를 제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했다.


수잔은 이 시기를 떠올리면 아쉬움이 많다. “다른 방송에 나가려면 신청을 하고 며칠씩 기다렸어요. 당장 내일 녹화인데, 허가가 안 나와 기회를 놓치곤 했죠.”


F-2(거주)

그러다 F-2(거주) 비자(사진)란 걸 알게 됐다. F-5(영주)를 제외하면 가장 안정적인 비자다. 한번 받으면 최장 5년까지 체류가 보장되며 취업도 자유롭다. 

수잔의 E-7-2(준전문인력) 비자에서 갈 수 있는 것은 F-2-7(점수제 거주) 비자로, 학력·한국어 능력·소득·연령(젊을수록 고득점)에서 일정 기준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봉사와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KIIP) 이수 점수를 더해 120점 만점에 80점을 넘으면 된다. KIIP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 과정으로 5단계 이수까지 총 515시간이 걸린다. “2번만 수업에 빠져도 탈락이라 3번째 도전해 이수했어요. 과거 기부 이력으로 2점을 추가로 받아 20175년짜리 F-2를 받았습니다.”


마침내 F-5(영주)

영주자격(F-5)은 체류기간 제한이 없고 10년마다 국내 거주 중임을 신고하면 갱신된다. 이주민에겐 꿈의 비자다. 201912월 기준 153291명이 영주권을 받아 체류 중이다. 점수제 거주(F-2-7) 비자를 가진 수잔의 경우 27가지 영주권 중 점수제 영주(F-5-16)가 현실적이었다.

 

한국 생활 10년에 한국인 뺨치는 한국어 실력, 다채로운 경력을 갖춘 그로서도 영주권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득이 걸림돌이었다. F-5-161인당 국민총소득(GNI·전년기준)2배 이상을 요구한다. 2019GNI3532만원이었으니 수잔은 7064만원을 넘겨야 했다. 그해 임금노동자의 중위 월소득(234만원)을 감안하면 꽤 높은 기준이다. “회사 급여가 기준에 못미치는 걸 문제 삼더군요. 방송, 통역으로 번 돈은 쳐주질 않았어요. 모두 성실히 신고하고 세금도 냈는데도요. 세 번 신청했는데 다 거절당했죠.”

 

마지막이라 여긴 4번째에 거짓말같이 영주권이 나왔다. 공무원에게 정말이냐고 몇번이나 되물었다.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았단 생각에 여러 감정이 차올랐다. 영주권자가 된 지 약 1, 마음은 어느 때보다 편하다 --769게시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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