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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족과 함께 살면서, 가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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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60회 작성일 21-05-1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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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살면서, 가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

[어서와, 불친절한 한국은 처음이지? ] 한국에 이주민 정책은 있는가

21.05.13 10:29l최종 업데이트 21.05.13 12:15l이한숙(achampspd)

 

19913, '해외노동력 수입'을 두고 열린 관계 장관회의에서 윗도리를 걷어붙이고 탁자를 두드리는 찬반 격론 끝에 '단순노무직 해외인력 수입' 원칙적 불가 방침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회의장 밖 한국은 이미 아시아의 대표적인 이주 목적국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다문화가족지원법',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난민법' 등 각종 준거법이 제정되었고, 사회통합 프로그램,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외국인력지원센터, 각급 지자체 위탁 지원센터 등 이주민 지원 인프라도 전국적으로 구축되었다. 그럼에도 '한국에 이주민 정책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여전히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는 어렵다.

30년째 나아진 게 없는 한국의 이주민 정책

단순노무직 해외인력 수입 불가 방침은 수입은 하되 정주는 금지한다는 원칙으로 변화한 채 지금까지 고수되고 있다. 그런데 체류자격을 불문하고 한국 사회가 이주민에게 요구하는 주요 역할은 선주민이 기피하는 업종과 직종에 인력난을 메우는 것이다. 때문에 이 원칙은 이주민들이 처한 현실 혹은 다른 배경에서 추진된 정책과 충돌을 일으키며 이주민들의 삶을 왜곡했다.

 

'해외노동력 수입'을 넘어서는 정책이 처음 모색된 것은 2000년 이후 국제결혼이 증가하면서부터였다. 그즈음 이민자 2세 문제로 시끄러웠던 유럽의 전철을 따라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정책 추진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정부와 학계는 정책 모델을 다문화주의에서 찾았고, 관련 정책은 다문화정책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다문화정책은 한국국적자와 외국국적 배우자로 구성된 가족으로 그 대상을 협소하게 한정했다. 이는 결혼이주민과 그 2세에게는 정주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 또는 그들에게만 허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재외동포정책은 동포포용정책과 외국인력정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동포들에게 정주와 가족동반 허용을 확대하면서도 적극적 사회통합 대상으로는 고려하지 않았다. 동포에게 주어지는 취업 비자인 '방문취업 비자'는 단순기능직에만 취업할 수 있지만, 사실상 기한 없는 연속체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명목상 정주 금지 원칙 때문에 비자 갱신을 위한 출국과 재입국을 반복해야 한다.

 

반면 재외동포 비자 소지자는 단순기능직에 취업할 수 없다. 어떤 직종이 단순기능직인지는 법무부가 정했고, 매번 달라졌다. 동포들은 체류가 보다 안정적인 재외동포 자격을 얻기 위해 돈과 시간을 퍼부어 딴 쓸모없는 자격증을 쥐고 이전에 하던 일을 하는 불법취업으로 내몰렸다.

 

공식적인 외국인력제도인 '고용허가제'는 단순기능직 정주 금지 원칙에 따른 단기로테이션 제도로 출발했다. 이후 취업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기업들의 요구에 정부가 화답해 최장 98개월의 연속 취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편 정부는 강제노동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는 사업장 변경 금지 조항에 대해서는 임금체불, 성폭력, 산업재해, 주거 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업장을 옮길 수 있는 사유'를 추가하는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나 그 사유를 증명해야 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이므로 추가된 사유는 현장에서는 쉽게 무용지물이 되었다.

 

현재 가장 포괄적인 이주민 정책은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근거해 법무부 주관으로 수립되는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이다. 그러나 현재 추진 중인 제3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18-2022)은 관광객, 해외 인적자본, 유학생, 외국인 투자 유치에 가장 많은 예산을 배정하고 있어 이것을 과연 이주민 정책이라 부를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주민 정책의 현주소 보여준 2019년 건강보험제도 개악

 

보험료 체납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1회라도 보험료를 미납하면 보험급여가 제한되며, 일정 금액 이상 체납되면 체류기간 연장이 불가능하다. 보험료 납부능력이 없는 이주민들은 체류연장 시점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건강보험료를 내고 다시 보험료를 체납했다. 결국 늘 급여제한 상태에 있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국내 체류 외국인은 꾸준히 증가해 200만 명을 넘어섰다. 그 증가는 장기체류 이주민이 주도했다. 그중 체류기간 제한이 없는 정주형 체류자격자(재외동포, 거주, 영주, 결혼이민)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가족동반 체류도 빠르게 증가해 왔다. 2020, 코로나 팬데믹으로 처음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이 감소했지만, 주로 단기체류자가 감소했고 장기체류 이주민은 크게 변동이 없었다. 이주민의 정주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민들은 정주하면서 정주를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 살면서 가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19년 개정된 건강보험제도는 그러한 이주민 정책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우선 건강보험 가입 자격이 있는 등록 이주민의 지역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서 소득과 재산에 무관하게 전년도 평균보험료 이상을 납부하도록 했다.

 

2021년 장기요양보험료를 포함한 평균보험료는 131790원이다. 그런데 세대주의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 한 세대로 합칠 수 있도록 해 이주민들이 한 가족당 여러 장의 평균보험료 고지서를 받는 일이 흔히 발생했다. 일부 체류자격별 일률적 감면제도가 있지만, 취약계층 감면제도는 이주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단 결혼이민(F-6), 영주(F-5) 자격자에게는 선주민과 동일하게 제도가 적용된다.

 

보험료 체납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1회라도 보험료를 미납하면 보험급여가 제한되며, 일정 금액 이상 체납되면 체류기간 연장이 불가능하다. 보험료 납부능력이 없는 이주민들은 체류연장 시점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건강보험료를 내고 다시 보험료를 체납했다. 결국 늘 급여제한 상태에 있게 되었다.

 

현재의 건강보험제도 안에서 결혼이민자, 영주자 외 이주민은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고 언제든 출국해 버릴 수 있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가족은 배우자와 어린 자녀 정도인 젊은 노동자로 정형화되어 있다. 때문에 고령의 부모, 학업 중이거나 장애가 있거나 요양 중인 성년 자녀, 형제자매로 구성된 가족, 조손가족, 기타 다양한 가족이나 가족 구성원의 존재는 아예 무시된다. 객관적 통계조차 검토하지 않는, 1990년대 탁상공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현실 인식이 그곳에 있다.

 

'체류 관리' 아닌 '생애주기' 관점으로

 

이주민 관련 정책이 컨트롤타워 없이 외국인력, 재외동포, 결혼이주민 등 대상별로 각각의 준거법, 각각의 위원회별로 파편적·중복적으로 추진되어 온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바다.

 

그러나 실상 컨트롤타워는 법무부이고, 관련 정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관리', 그것도 출입국과 체류 관리인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체류관리 지침에 따라 입국 목적을 중심으로 구분한 약 200개로 세분되어 있는 체류자격과 법무부의 광범한 재량권이 각 이주민의 정체성과 권리, 미래를 결정한다. 법무부는 체류자격을 새로 만들거나, 발급 건수를 조절하거나, 자격 변경 요건을 정하는 것으로 외국인력정책, 동포정책, 결혼이주민정책, 난민정책, 유학생정책 모두를 사실상 좌지우지한다.

 

출입국과 체류 관리 중심 정책은 한편으로 각 지역 출입국사무소 근처에 밀집한 행정사 사무소가 대표하는 이주산업의 번성을 가져왔고, 다른 한편으로 이주민을 관리 대상으로 공동체로부터 끊임없이 구분하고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주민에게는 미래를 준비하기 어려운 아슬아슬한 체류와 엄청난 수수료 부담을 가져왔다.

 

이주민 정책은 무엇보다 이주민을 사람으로, 함께 살아갈 주민으로 포용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사람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일하고, 가족을 만들고, 늙고, 아프기도 하며, 누구나 죽는다. 따라서 이주민 정책은 출산과 보육, 교육, 취업, 의료와 주거 등 생활과 사회보장 전 영역을 아우르는 정책이어야 하며, 사람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포괄적 정책이어야 한다.

 

때문에 어느 한 부처가 주관할 수 없는 정책이며, 출입국관리를 주 업무로 하는 법무부는 더더욱 주관할 수 없는 정책이다. 빠른 시간 내에 '관리'에서 '포용'으로 이주민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그 부담은 우리 모두가 함께 지게 될 것이다.

 

[기획 / 어서와, 불친절한 한국은 처음이지?]

코로나 걸린 것으로 몰아... 자유가 박탈된 사람들 http://omn.kr/1t648

상상해보라, 태어났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면... http://omn.kr/1t6pm

'18시간의 노동, 시급 1300'... 끔찍한 노동의 정체 http://omn.kr/1t7bz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한숙 님은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15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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