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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차가운 시선… '한국 시집살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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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319회 작성일 09-08-0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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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족. 결혼하는 100쌍 중 11쌍이 국제 커플 말·문화 장벽도 문제지만 2세 교육이 가장 큰 고민

[조선일보 2009-08-07]

 

결혼하는 100쌍 중 11쌍이 국제커플이다(2008년). 하지만 그들이 쉽게 정착할 만큼 우리 사회의 시선이 우호적이진 않다. 태국 출신의 온노이 라오(32)씨에게도 한국의 시집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7년 전 전북 장수군의 농가로 시집온 라오씨는 한국에 와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한국 속담을 실감하게 됐다고 했다.

"말이 잘 안 통하니 오해가 쌓여 갈등도 많았어요. 서로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나쁘게 이해하고 서먹해지는 거죠. 가족 행사 때 7남매가 다 모이는데 시누이들이 '부모님한테 잘하라'고 한마디씩 하면, 그걸 나무라는 걸로 이해하고 속상할 때도 많았고요. '나이 어리고 외국에서 왔다고 무시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눈이 형형한 이국적 외모의 그의 입에선 진한 전라도 억양이 섞여 나왔다. 이제는 주변에서 "한국 아줌마 다됐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지난 7년간 참 속앓이도 많이 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라오씨의 시집은 쌀과 쌈채소 농사를 짓는 평범한 시골 농가다. 2002년까지만 해도 이 집엔 한상철(73)·윤망내(64)씨 부부와, 윤씨 표현을 빌리자면 '쉰내 푹푹 나는' 노총각 아들 둘, 네 사람이 단출하게 살았다.

하지만 라오씨가 장남 준희(44)씨와 결혼해 들어오면서 적막하던 한씨네 농가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라오씨가 세 딸을 낳으면서 식구가 불더니, 차남 도희(42)씨도 올해 초 베트남에서 온 누엔 녹띰(25)씨를 아내로 맞았다. 임신 중인 녹띰씨가 올해 말 몸을 풀면 딱 열 식구가 된다.

한 국내 교회의 주선으로 한국에 들어온 라오씨는 준희씨와 두어 차례 데이트를 한 뒤, 결혼식을 올렸다. 라오씨는 "처음에는 한국말, 한국음식, 한국문화, 모든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하는데 오해가 안 생길 수가 없었죠. 집에서 큰소리라도 나면, '또 나 때문인가' 하고 움츠러들기도 했었고요."

태국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던 그에게 농사일도 쉬운 게 아니었다.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입덧도 심해, 서울에 사는 친척을 통해 태국 음식을 구해다 먹으며 버텼다.

라오씨는 시집 온 뒤 지금까지 딱 2번 태국 친정에 다녀왔다. 하지만 빠듯한 시골 살림에 준희씨는 아직 처가 구경을 못 해보았다.

아이들이 크면서 준희씨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엄마를 닮은 딸들이 학교에 가게 되면 '까무잡잡한 피부 때문에 왕따를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준희씨는 "해가 갈수록 정은 더 들고 오해하는 일은 적어진다"고 했다.

"말이 안 통하니 혼자 속으로 삭이는 건 또 얼마나 많았겠어요? 손끝이 야물어 일 많은 시골 살림도 잘 꾸리고, 부모님한테도 잘해요. 가끔씩 아이들 교육 문제나 살림하는 걸로 다투긴 하지만 아내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더 커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한데…

다문화 가족은 보편적인 가족 형태로 자리 잡았다. 결혼 이민자가 16만7090명에 달하고, 이런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10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들 다문화 가족이 문화적 차이를 넘어 '진짜 가족'으로 화학적 결합을 이루기까지는 저마다 어려움이 적지 않다. 친지·이웃이며 주변 사람의 시선이 아직은 차갑고,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돼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라오씨는 비교적 한국사회에 잘 정착한 편에 속한다. 요즘 장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 일을 하고 있는 그는 결혼 이주여성들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털어놨다.

"어린 신부가 도망갈 수 있다고 집에 가둬놓는다든지, 험한 말을 하거나 때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한국말도 모르고 친구도 없는데 식구들마저 그러면 누구를 믿고 살겠어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다문화 가정에서 한국인 배우자에 의한 가정폭력 발생률은 47.8%에 달했다. 2쌍 중 1쌍은 폭력을 경험한다는 얘기다. 모욕적인 말로 괴롭히는 정서적 폭력이 가장 많았고(27.9%), 물건을 던지거나 내리치는 신체적 폭력도 25.3%에 달했다. 외출을 못하게 하거나 주민등록증을 빼앗는 등의 인권침해도 적지 않았다.

이혼도 증가추세다. 작년 기준으로 전체 이혼 10건 중 1건은 다문화 가족이었다.

다문화 가족의 어려움이 자식 세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말을 못하는 엄마와 지내다 보니 언어발달이 늦어져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초·중·고 취학연령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 2만5000여명 중 24%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고, 특히 고교 진학률은 30%에 불과했다(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라오씨는 요즘 옆 마을에 새로 시집온 베트남 신부가 걱정이라고 했다. "집에 가겠다고 울고불고한대요. '여기가 우리 가족과 내가 살 곳이다'고 생각하면 다 좋아지는데…. 우리 동서(녹띰)도 조용한 성격이라 말이 없는데 지금 무지 힘들 거예요. 제가 한국말도 더 가르쳐주고 다독여줘야죠."
 
 

김경화 기자 peac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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