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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세 각시가 동네 복덩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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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204회 작성일 09-06-1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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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세 각시가 동네 복덩이여~"

[한국일보 2009.06.11]

 

 

충북 청원 한시울 마을, 죽마고우 총각들 결혼 이야기
리와나
마을 처녀들과 차례로 천생연분 맺어
시부모 공경… 동네 활기… 두 마을 교류로 이어져

죽마고우인 농촌 총각 3명이 필리핀의 한 마을 처녀 3명과 줄지어 천생연분을 맺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충북 청원군 가덕면 한계2리 한시울 마을의 한명동(43)ㆍ미첼 가부요(33),

한운동(43)ㆍ아도라 파우익(27), 정석희(43)ㆍ지나 라피탄(31) 부부.

한명동, 한운동, 정석희씨는 1966년생 말띠 동갑내기다.

또래들 대부분이 일찌감치 도시로 떠났지만, 이들은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고향 땅을 지키고 있다. 명동씨는 이장, 운동씨는 새마을지도자, 석희씨는 반장으로 마을 대소사를 챙기고 있다.



이들 '말띠 삼총사'와 혼인한 필리핀 새댁들도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

필리핀 북부 루손섬 북동부의 리와나 마을. 수도 마닐라에서 차로 꼬박 12시간 걸리는데,

한시울 마을처럼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라고 한다.

혼인 물꼬를 튼 이는 명동씨다. 마흔이 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해 고민하던 차에

사돈댁 소개로 가부요씨를 알게 돼 2006년 9월 백년가약을 맺었다.

친구가 필리핀 아내를 얻어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면서 임신까지 하자,

운동씨도 마음이 움직였다. 이를 눈치 챈 가부요씨가 운동씨에게 고향 후배인

파우익씨를 소개했고 두 사람은 2007년 6월 결혼에 성공했다.

정석희씨 부부는 운동씨 부부가 중매했다. 착하고 진솔한 정씨의 성품을 눈여겨 본

파우익씨가 자신의 사촌언니 라피탄씨를 소개한 것이다. 정씨 부부는 올 4월 결혼해

아직 신혼 재미에 빠져있다. 운동씨와 석희씨는 이렇게 동서지간이 됐다.

"파우익, 이 화장대 어디다 놓을까?" "우리 어머니에게 여쭤봐야죠."

지난 5일 오후 산아래 텃밭 모퉁이에 둥지를 튼 운동씨 집.

필리핀 새댁들이 마당에 수북이 쌓인 가재도구를 집안으로 부지런히 날랐다.

청주시내에 살던 운동씨 어머니(80)의 살림을 옮기는 중이라고 했다.

막내 파우익씨가 바빠지자 '고향 언니들'이 팔 걷어 붙이고 나선 것이다.

운동씨는 "지난달 초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형님 댁에 계시던 어머니가 고향에서

우리와 함께 살겠다고 하셔서 모셔오는 길"이라며 "무슨 일이든 세 가족이 함께 한다"고 했다.

맏언니 가부요씨가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말했다.

"이따가 일 끝내고 부추, 김치 넣고 부침개 부쳐먹자."

피부색만 다를 뿐 여느 시골 아낙네와 말투가 똑같다.

필리핀 새댁들은 침체한 마을 분위기를 확 바꿔 놓았다.

25가구가 오순도순 모여 사는 한시울은 32번 지방도에서 꼬부랑길을 따라 6㎞나

더 들어가야 하는 산골 마을. 젊은이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마을에는 적막감이 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필리핀 며느리들이 아이를 낳으면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국의 새댁들은 마을 간부 아내들답게 동네 일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경로잔치가 열릴 때는 김치찌개, 잡채 등 음식을 만들어 어르신들 대접하는 일을 도맡는다.

새댁들은 한국 문화에 빠르게 적응해 요즘은 셋이 모이면 부침개를 부쳐먹고 윷놀이를 즐긴다.

한국어 배우는 데도 열성이다. 시집온 지 석 달이 채 안된 라피탄씨는 "처음 한국에 올 때

걱정을 많이 했는데 고향 자매끼리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다 보니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새댁들은 시어머니 극진히 모시는 것도 닮았다.

"시어미한테도 그렇고 동네 어른들한테도 그렇고… 항상 밝은 얼굴로 공경하는 마음이 참 고와.

복덩이들이지." 마을 어귀에서 만난 노인회장 김홍륙(77)씨는 필리핀 새댁들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세 쌍이나 사돈의 연을 맺은 한시울과 리와나 마을 간 교류도 각별하다.

두 마을이 가까워지는 데는 운동씨 역할이 컸다. 결혼식 때 온 동네 사람들이 이틀 동안 잔치를 열어 축하해 준 리와나 마을의 인심에 매료된 운동씨는 틈만 나면 처가 마을을 찾아 한국어도 가르치고 한국 문화도 알리고 있다.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4차례나 방문했는데, 한 번 갈 때마다 두세 달씩 묵으며 마을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촌장 미날라윅(47)씨와는 가끔 편지를 주고 받는다고 한다.

운동씨는 "촌장과 함께 못자리도 만들고 마늘도 수확하면서 농사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동씨는 처가 동네를 또 방문하기 위해 15일 출국한다.

이번에는 아내와 어머니, 한 살 배기 딸 라은이까지 온 가족이 동행한다.

이장 한명동씨는 "형편이 되는 대로 운동, 석희네와 함께 세 가족이 모두 처가 마을에 가서

그곳 어른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가게 되면 우리의 친환경 농법 등

선진 농업기술을 전수해줄 참"이라고 말했다.

청주=글·사진 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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