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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은 우리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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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572회 작성일 09-05-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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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은 우리 미래다

[세계일보] 2009-05-13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한국으로 시집왔다가 1년 만에 철창에 갇힌 츠호은릉엥(18).

캄보디아의 시골 출신인 츠호은릉엥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지난해 4월 결혼정보업체 소개로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남편이 스무살이나 많고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한국인과 결혼하면 끼니 걱정 없이 잘 산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츠호은릉엥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지난 1월31일 밤 11시. 평소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은 이날도 만취 상태로 귀가해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그는 “제발 때리지 말라”며 주방용 칼을 들고 저항했다.

결국 엉겁결에 휘두른 칼에 남편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5일 만에 사망했다. 아기와 함께 장밋빛 미래를 갈구하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임신 5개월인 그는 살인죄로 대구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70여개 여성·시민단체와 종교계는 “고의성 없는 사고로 정당방위이고 가정폭력 피해자”라며 구명운동을 하고 있다.

120만명에 달하는 우리나라 다문화가정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혼율은 사회문제가 될 만큼 높아졌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겉도는 2세들도 늘고 있다.

최근 통계청 자료는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 외국인과 혼인한 부부 3만6204쌍 중 무려 1만1255쌍이 이혼했다. 세쌍 중 한쌍꼴로 갈라섰다는 얘기다. 이혼의 배경에는 가정폭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문화가정 자녀는 6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해 ‘국제결혼가정 학생 현황’에 따르면 학령기 자녀 중 24.5%가 정규교육권 밖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주변인’이 늘고 있는 셈이다. 피부색에 대한 편견과 차별, 소외감에 따른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2020년에는 20대 5명 중 1명, 신생아 3분의 1이 다문화가정 자녀라는데 방관할 일이 아니다.

왜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걸까. 무엇보다 출신 국가의 경제력에 따라 외국인들을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습성이 문제다. “오죽하면 탈북 청소년들이 북한 출신이라고 하면 더 차별받으니까 조선족이라고 얘기합니다. 차별적인 서열의식 탓입니다.” 한 시민운동가의 하소연이다.

동화작업에만 초점을 맞추는 다문화 정책도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 대부분 ‘약자’인 결혼이주민에게 우리 것만을 강요하지 말고 ‘기득권자’인 우리가 마음과 귀를 열고 이들의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 서로의 생활방식을 이해해주지 않고는 다문화사회 정착이 요원하다.

정부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가장 상식적인 대안은 다문화사회다. 이런 만큼 다문화가정 자녀는 우리의 소중한 자원이자 희망이다. 이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정착을 도와주면 창의력과 개척정신을 발휘할 것이다. 머지않아 이들이 사회의 중추로서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수행하는 만큼 우리 사회의 포용력을 더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공영방송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 공영 TV 어린이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프로에서는 여러 인종의 아이들과 인형들이 뒤섞여 재미있게 논다. 놀고 즐기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속엔 인종차별이 있을 수 없다. 말과 문화를 배우면서 아이들은 ‘자기와 다른’ 아이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다양성’을 이해시키는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유럽, 미국의 대학에선 ‘다양성’이 교양과목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인종차별적 언어 구사’가 가장 비난받고 사회적 제재를 받는다는 인식이 사회규범이 된 것이 어느날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다.

츠호은릉엥은 최근 교도소를 찾아온 어머니에게 “한국에 시집온 걸 후회해요. 캄보디아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흐느꼈다. 더 이상 이 같은 비극을 보고 싶지 않다. 제2, 제3의 츠호은릉엥을 막으려면 허술한 다문화정책을 수술하고, 그들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다문화가정은 곧 우리의 미래다.

채희창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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