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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농장 온 지 17달 “마을은 접근 힘든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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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373회 작성일 09-05-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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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농장 온 지 17달 “마을은 접근 힘든 성”

[한겨레] 2009-05-15

 

 

1일 아침 버섯농장은 조용했다. 떠들썩한 마을 분위기는 전해지지 않았다. 이장이 두 차례 방송을 했지만 농장에선 전혀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마을과 농장 사이에 있는 언덕을 넘지 못한 탓이다. 해남버섯영농조합의 외국인 노동자 스라이 잔닌(31·캄보디아)은 이날 오전 6시 평소처럼 눈을 떴다. 동료 네명이 기거하는 작은 방이다. 눈을 뜨자마자 그는 벽에 붙은 어머니 사진에 아침 인사를 건넸다. 웃는 모습이 아이처럼 맑은 그는 어릴 적부터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를 꿈꾸었다. 프놈펜의 대학에 진학했으나 1학년 때 그만뒀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었지만 등록금을 대지 못했다. 이때부터 돈을 벌어야만 했다.

우연히 한국에 가면 한달에 100만원쯤 받는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 타향살이의 계기가 됐다. 경비 400만원은 다림질로 한달에 20만원씩을 벌어 마련했다. 이렇게 일년 남짓 준비해서 겨우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잔닌은 2007년 11월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경기 화성의 농협연수원에서 2박3일 간단한 인사법을 배우고 버섯농장에 온 지 17개월이 지났다. 농장에선 한국인 3명과 외국인 10명이 일한다.

“추운 겨울에 와서 힘들었어요. 동상에 걸린 듯 피부가 터지고 손가락이 짓물러 병원 신세를 여러 차례 졌지요. 그땐 날마다 집으로 전화하고 남몰래 눈물 짜고….”
농장 안에서 살며 곁눈질한 한국의 농촌은 신기하고 놀라웠다. 농부들이 줄지어 느릿하게 일하는 남국과는 달리 한국에선 이앙기와 콤바인이 뚝딱 농사를 해치우는 것처럼 보였다. 궁금해도 마을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큰 탓에 접근하기 힘든 ‘성채’로 느껴졌다. 농장 안에 베트남사람과 재중동포가 일했지만 마을로 시집온 같은 민족 출신 새댁들을 전혀 모르고 지내는 눈치였다. 굳이 만날 필요도 없었고, 남편들이 달가워하지 않으리라는 지레짐작으로 위축됐다.

이날도 잔닌은 군민의 날 축제가 벌어졌는지, 주민 대부분이 읍내로 떠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마을의 소식과 면의 한글교실은 다문화 가정엔 열려 있어도 외국인 노동자한테는 아직 닫혀 있다. 초대받지 못한 그는 오전 10시반 읍내의 정반대 쪽인 목포로 방향을 잡았다. 동료가 서울 결혼식에 가는 바람에 모처럼 얻은 휴일을 보내려는 나들이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고 시장을 봤다. 그는 오후 4시반 마을 한켠에 ‘섬’처럼 떠 있는 농장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읍내로 나간 주민들이 아직 귀가하지 않은 듯 마을은 고요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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