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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세상을 바꾼 판결①] "불법체류 외국인도 노조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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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731회 작성일 17-09-1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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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2015년 대법원 판결로 10년만에 미등록 외국인 노조 합법화…

이주노조 조합원 91명→1250명 증가

편집자주대법원은 우리 사회의 최종심급이다. 특히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절대적 권위를 지닌다. 이후 모든 판결의 가이던스가 된다. 오는 25일 퇴임하는 양승태 대법원장도 6년간의 임기 동안 수많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남겼다. 그 중엔 세상을 바꾼 의미 있는 판결도, 논란을 남긴 아쉬운 판결도 적지 않았다. 머니투데이 법조팀(the L)이 법학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추려낸 양승태 대법원의 '세상을 바꾼 판결들'과 '논란의 판결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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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도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2007두4995)

2015년 6월25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린 판결이다. 이 판결로 불법체류 근로자 중심의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은 2005년 5월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한지 10년만에 합법 노조의 지위를 얻었다. 다른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조 설립도 가능해졌음은 물론이다. 
 
이는 사실상 국내에서 일하는 모든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조 설립 및 가입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취업 자격이 있는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법적으론 기존에도 노조 설립 및 가입이 가능했지만 사측의 압박 때문에 실질적으론 노조 활동을 하는 게 불가능했다. 사측을 상대로 교섭력을 확보하기 위해 불법체류 근로자들과 힘을 합쳐 노조를 만들고 싶어도 법적으로 허용이 안 됐다. 그러나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조 설립 허용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취업 자격 유무와 상관없이 함께 노조를 세우는 게 가능해졌다.
 
과거 이주노조 측을 대리했던 권영국 변호사는 "당시엔 이주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면 바로 해고당하는 분위기였다"며 "이 때문에 취업 자격이 있는 노동자들은 노조에 참여하기는 어려운 구조였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중심으로 노조가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취업 자격 없는 외국인도 근로자"
 
당시 사건의 쟁점은 '취업 자격이 없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를 노조 가입 자격이 있는 근로자로 볼 수 있는가'였다. 1심은 '불법체류 노동자는 노조 가입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선 판결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불법체류 외국인이라도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면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가 맞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8년4개월의 장고 끝에 2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취업 자격과 상관없이 실제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노동3권을 보장받는 근로자이고, 근로자는 누구나 자유롭게 노조를 조직하거나 가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는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며 "근로자는 노동3권을 보장받을 수 있고 외국인인지, 취업 자격이 있는지 등에 따라 근로자 여부가 갈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법원은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도 근로자라면 노조를 조직하고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은 일 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외국인 고용을 제한하는 것일 뿐 근로자인 외국인이 노조 설립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주노조 조합원 91명→1250명
 
대법원 판결 이후 이주노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10년 전 91명으로 시작한 이주노조의 조합원은 현재 1250여명으로 늘어났다. 과거엔 불법체류 외국인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취업 자격을 가진 외국인이 대부분이다. 과거엔 사측의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딜 수 밖에 없었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젠 노조 가입을 통해 당당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
 
박진우 이주노조 사무차장은 "판결 전에는 합법노조가 아니다보니 가입을 망설이거나 걱정하는 노동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마음 편히 가입할 수 있게 됐고, 노조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노조로서 회사와의 단체교섭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다른 이주노조 관계자는 "더 이상 노조 활동을 이유로 사업장에서 쫒겨나거나 추방당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10년의 투쟁기간 동안 노조 임원 대부분이 정부로부터 추적 단속을 당했고, 이 가운데 5명은 강제 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네팔 출신인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아직까지도 노조활동을 하기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합법화되면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며 "여전히 보이지 않는 탄압은 이뤄지고 있지만 최소한 공개적으로 대놓고 탄압을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당연한 판결'이 나오기까지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지적도 있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은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는데 출입국관리법상 체류 자격을 따지는 것은 법리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당연한 판결이라고 생각했다"며 "대법원의 고민이 길어지자 정치적 부담 때문에 판결을 미룬 것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래 끌 이유가 없는 사안이었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며 "결과적으로 노조가 이겼지만 일반 노조였다면 그 전에 이미 와해되고 없어졌을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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