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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 시행 10년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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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791회 작성일 14-08-2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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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21

그곳이 어떤 지옥이더라도 [2014.08.25 제1025호]
 
[표지이야기] 대표적 악성 조항 ‘사업장변경제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제한(3년간 3회)은 지난 10년간 고용허가제의 최우선 개선 과제로 꼽혀왔다. 정부는 사업장변경제한의 취지를 ‘내국인 노동자 일자리 보호’와 ‘이주노동자의 과도한 임금상승 방지’라고 밝혀왔다.

고용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은 불가능하다.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변경제한은 그들이 처한 ‘지옥’을 무조건 참도록 만드는 악법이다. 고용주가 위법한 노동을 강제해도 그의 허락이 없으면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 고용주의 잘못을 이유로 사업장을 이동하려면 ‘2개월분의 임금을 전액 지급받지 못하거나 임금의 30% 이상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가 2개월 이상일 경우’(고용노동부의 ‘외국인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 고시’)여야 한다. 과도한 노동의 입증 책임은 노동자에게 있다. 참지 못하고 사업장을 벗어나 고용주가 이탈신고를 하면 ‘불법체류자’가 되고 만다. 이주노동자가 5일 이상 무단결근할 때 고용주가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한 이탈신고제도도 고용주의 강력한 통제 수단이 되고 있다.

고용주의 잘못이 입증돼 사업장 변경신청이 받아들여지더라도 고용센터는 이주노동자에게 구인 사업장 명단을 제공하지 않는다. 명단을 제공하던 기존 제도가 2012년 8월1일부터 퇴행한 결과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정보를 갖게 되면 자신들의 취업 주선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란 비판이 일었다.

 

 

 

“농·축산업에는 근로시간·휴일 적용 안 됨” [2014.08.25 제1025호]
 
[표지이야기] ‘합법적 착취’ 고용허가제

‘살인 노동’에 시달리지 않는 농·축산 이주노동자를 찾기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의 밥상은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 농·축산업 분야 이주노동자 ‘도입’은 산업연수생제가 시행 중이던 2003년(몽골·우즈베키스탄에서 923명) 시작됐다. 10년이 지난 2013년 12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수는 1만9726명으로 뛰었다.

2011년 12월 정부는 베트남, 캄보디아, 타이, 버마를 농·축산업 분야 ‘특화국가’로 선정했다. 2012년까지는 베트남 노동자 수가 가장 많았으나, 같은 해 정부는 이탈률이 높다는 이유로 베트남 노동자에 대한 적용을 중단했다. 1년 사이 캄보디아 노동자 수가 베트남 노동자를 역전(46쪽 표 참조)했다.

정부는 전체 업종에서 농·축산 이주노동자 도입 비율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수가 증가할수록 그들이 겪는 고통도 정비례하는 구조다. 그 핵심에 근로기준법 제63조(적용의 제외)가 있다. 근로기준법 4장과 5장에서 정한 근로시간과 휴게·휴일 규정이 농·축산 노동자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계절·날씨 등 자연조건에 강한 영향을 받는 산업이므로 엄격한 규제가 힘들다는 이유다. 고용허가제는 ‘노예연수제’라 불리던 산업연수생제에 견줘 근로기준법 적용이란 ‘핵심 비교우위’를 내걸고 도입(2004년 8월17일)됐다. 제63조는 고용허가제 시행 취지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계약서에 명시한 노동시간과 휴일을 무시하고 ‘상상 이상의 일’을 시켜도 고용주가 초과근로수당이나 휴일수당을 떼먹는 빌미가 된다.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는 “고용센터가 거꾸로 불법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 노동시간이 300시간을 가볍게 넘겨도 고용노동부는 제재를 안 한다. 최저임금법을 의도적으로 위반한 계약서를 고용주들이 작성해오면 그대로 추인한다. 불법적 계약서를 허가한 뒤엔 노동자들이 법 위반을 진정할 때마다 근로시간을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무책임이 어디 있나.”

가족노동 중심의 한국 농·축산업이 근대적 고용관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법이 노골적인 노동착취를 보장하는 셈이다

 

 

 

돼지 치고 밭매고 밥 차리고 성희롱 그것이 “한국의 농업” [2014.08.25 제1025호]
 
[표지이야기] 돼지고기·복분자·호박·상추·딸기… 이주노동자의 눈물로 영글어 밥상에 오르기까지
.[돼지고기: 전남 장성엔 1천 두 이상 규모의 양돈 농가가 12곳 있다. 장성 돼지고기는 보통 ‘녹차 먹인 돼지’로 브랜드화해 판매된다. 육가공업체를 거쳐 대부분 서울에서 유통된다. 개별 판로를 가진 일부 농가들은 전북 남원 등지로 출하한다.]

돼지는 ‘연중 무휴’의 노동을 먹고 선명한 삼겹을 얻었다.

돼지가 먹고 남은 시간은 계약에 없는 양파·고추·고구마·마늘·죽순이 빨아들였다. 캄보디아 노동자 ㅌ(27·남)은 2013년 5월 한국에 왔다. 전남 장성에서 돼지 축사일을 하기로 계약했다. 고용주는 2천여 두의 돼지를 먹였다.

지난 6월8일 그는 아침 6시께 종부사(어미돼지를 인공수정하는 축사) 돼지들에게 사료를 줬다. 임신사(임신 대기 중이거나 임신 중인 돼지 축사)의 똥도 치웠다. 아침 8시엔 사장의 밭에서 마늘을 수확해 말렸다. 오전 11시께 돼지 축사를 방역했다. 오후 5시20분께 사장의 고구마밭과 콩밭을 제초했다. 6월9일 아침 6시께 축사에 사료를 넣었다. 오후 4시20분께 사장의 옥수수밭을 맸다. 저녁 7시50분께 사장 누나의 밭에서 양파를 출하했다. 6월11일 새벽 3시께 육성사(새끼 돼지를 35kg이 될 때까지 키우는 축사) 창문과 환풍 장치를 고쳤다. 6월17일 저녁 6시께 사장 아버지의 밭에서 양파를 거뒀다. 저녁 8시20분께 인공수정을 했다. 저녁 8시38분께 돼지를 도축했다. 6월13일 사장의 고추밭 제초 작업을 마친 뒤 저녁 8시 넘어 죽은 돼지를 옮겼다. 돼지가 축사 안에서 죽을 때마다 수레에 실어 퇴비장에 갖다버렸다. 6월26일 저녁 8시40분께 종부사 케이지를 용접했다.



 

사장은 성공한 농업인으로 불렸다.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됐다. 인터넷에서 그의 사진을 보자마자 ㄹ은 말했다. “복분자 사장님.”


 

그의 노동시간은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다. 계약서에서는 그렇다. 월 250시간이다. 약속된 월급은 110만원이다. 시간당 4400원꼴이다. 2013년(4860원)과 2014년(5210원) 최저시급을 훨씬 밑돈다. 계약과 실제는 달랐다.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 전후까지 일했다. 매일 13~14시간 노동했고 2시간 쉬었다. 한 달에 320~370시간씩 혹사당했다. 110만원에 대입하면 시급 2973원이다. 월 100시간에서 140시간치의 임금을 떼였다.

서류상 그는 사장의 양돈 노동자였다. 현실에선 사장 개인의 밭을 매는 인부도 됐다. 사장 식구들이 사적으로 부리는 ‘머슴’이기도 했다. 축사에서 짬이 날 때마다 고추밭으로, 콩밭으로, 고구마밭으로 불려다녔다. 대나무밭에서 죽순도 캤다. 그는 사장 가족이 돌려쓰는 ‘가노’(家奴)였다. ㅌ이 ‘정해진 일만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사장은 말했다. “이 모든 게 다 농업이야.”

그는 인간이었으나 인간의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일을 요구받았다. 1년여 동안 그는 단 하루의 휴일도 얻지 못했다. 계약서에 휴일은 ‘일요일’ ‘공휴일’ ‘매주 토요일’ ‘격주 토요일’을 모두 외면하고 ‘기타’에 표기돼 있다. 사장에게 휴일과 임금 인상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철근을 휘둘러 ㅌ의 어깨를 내려치는 것으로 사장은 거부했다. 다친 어깨로 이틀을 방에서 지냈다. 그가 농장에서 얻은 유일한 휴일이었다. 사장은 지난 5월 새로 데려온 캄보디아 노동자 2명을 8일 만에 내보냈다. ‘키가 작아 일을 잘 못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한국에 처음 온 그들은 사장에게 ‘불량 소’로 판정받고 초단기로 버림받았다. ㅌ은 7월 중순 농장을 빠져나와 경기도 안산의 ‘지구인의정류장’에 의탁했다. “빨리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장성의 어느 육질 좋은 돼지고기는 ‘ㅌ들’의 눈물로 길러져 소비자의 밥상에 오르고 있다.

 

 

안마시키며 “아빠라고 부르라”

 

[복분자·양파: 전북 고창은 국내 최대의 복분자 산지다. 전국 재배면적의 36%를 차지한다. 지역 농협과 농가는 전국 소비자 15만여 명에게 직거래로 복분자를 공급한다. 관내 주류업체나 복분자즙 가공업체로도 납품된다. 농협이 수매한 고창 양파는 주로 서울에서 판매된다.]

복분자, 양파…. ㄹ(21·여)이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운 말. 아프고 두려운 말이다.

 
 
» 한국에 막 입국한 여성 농업이주노동자들은 낯설고 외진 농촌에서 자주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된다. 사진은 서른 살의 고용주가 어린 피고용인(23)을 강제로 끌어안으며 웃고 있는 모습으로, 피해자 주변 인사가 찍어 보관한 것이다. 지구인의정류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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