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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다문화 한국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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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805회 작성일 14-06-0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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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다문화 한국 10년

기사입력 2014-05-24 03:00:00 기사수정 2014-05-24 03:00:00

 
 
 
 
 
 
 
‘무지개 이웃’ 125만명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이제 한국에서는 가족도 국경이 없는 시대가 됐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딸 조안나(가운데)를 입양한 박혁재(왼쪽), 안진서 씨(오른쪽) 부부와 박 씨 부부가 낳은 아이들은 피부색과 관계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금은 한국말 잘하죠. 목소리만 들으면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인 줄 알 거예요.”

주부 안진서 씨(40)는 방글라데시에서 입양한 딸 박조안나 양(15)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이 ‘마음으로 낳은 딸’은 안 씨의 식성과 말투, 생각까지 빼닮아가며 쑥쑥 크고 있다.

안 씨는 남편 박혁재 씨(40)와 2005년 결혼했다. 이들은 결혼할 때부터 “앞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고, 아이도 입양하자”고 약속했다. 부부는 결혼 후 약 2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입양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국 아이를 입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에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조안나라는 아이를 만났는데 너무 예뻐서 딸 삼고 싶더라”란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방글라데시의 교육환경이 열악해 조안나도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었다. 부부는 입양 서류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하게 안 씨가 임신을 하게 됐다.

안 씨는 임신 6개월이었던 2008년 12월 조안나를 만나러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당시 조안나는 한국말을 하나도 할 줄 몰랐고, 조안나 부모와는 간단한 영어나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안 씨 부부는 조안나를 입양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쌍둥이 딸들(5)을 낳았다. 동생들이 태어나자, 조안나는 엄마, 아빠에게 매일같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기 시작했다. 자신이라는 대답을 듣고 싶어서였다. 박 씨는 회사에 다녀오면 큰딸과 먼저 놀아준 뒤 쌍둥이 딸들을 돌봤다.

사람들은 이들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에 익숙해졌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 이런 용어는 생소했다.

국내에서 다문화가정이란 용어는 결혼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생겨났다. 국제결혼가정의 아이들이 ‘혼혈’이라고 불렸던 게 계기였다. 2004년 4월, 시민단체인 ‘건강가정시민연대’는 차별적인 용어를 고치자며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결혼 자녀를 ‘다문화가정 2세’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 용어는 빠르게 전파됐고, ‘다문화’란 수식어가 붙은 단어들도 등장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엔 결혼이민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민자 124만7834명(3월 기준)이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삶을 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나는 러 출신, 아내는 일본… 한국이 좋아 뿌리 내렸죠”


“회사서 첫 외국인 정규직 되고… 변호사 공부 학비도 지원받아
취직-사업… 한국은 기회의 땅, 나 같은 이민자 계속 늘어날 것”


지난해 5월 21일 세계인의 날(5월 20일)을 맞아 서울 숭실대에서 열린 행사에서 전통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원들. 세계인의 날은 국민과 외국인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08년 제정됐다. 올해엔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고려해 기념식과 문화행사를 열지 않았다. 한국이주여성연합회 제공
 
“영화에서 보면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은 그곳을 ‘꿈이 이뤄지는 나라’라고 생각했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한국이 ‘성공이 이뤄지는 나라, 성공을 끌어당기는 나라’입니다.”

러시아 출신인 드미트리 레투놉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41)는 “한국에 와서 학교도 졸업했고, 좋은 곳에 취직해 아내도 만났고, 아이들도 낳았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모든 인생이 이뤄진 거나 마찬가지”라며 유창한 한국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1953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인으로 귀화한 사람은 13만5810명. 레투놉 변호사는 올해 2월에 귀화했다. 그는 한국에서 일본인 아내(38)를 만나 결혼했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고 있다. 아내는 일본 국적, 두 아이는 러시아 국적이다. 아이들은 주로 아빠와는 러시아어, 엄마와는 일본어, 유치원에선 영어와 한국어로 대화한다.


성공이 이루어지는 나라

레투놉 변호사는 1998년 유학생 신분으로 처음 입국했다. 한국 대학에서 무료로 한국어 연수를 시켜 준다는 소식을 접하고, 3개월간 연수를 받으러 온 것이다.

처음부터 한국에서 계속 살 의향은 없었다. 하지만 연수가 끝날 무렵, 금융위기로 러시아 경제상황이 좋지 않자 돌아가지 않고 서울대 국제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이때부터 한국과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석사 학위를 딴 후 2004년부터 LG건설(현 GS건설)에서 일했고, 첫 외국인 출신 정규직 직원이 됐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 직원들은 대개 계약직이었던 때였다. 그는 “정말 감동을 받았고 자랑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레투놉 변호사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 2007년 법무법인 율촌으로 자리를 옮겼다. 러시아와 관련해 마케팅과 시장조사 등 각종 프로젝트 업무를 맡았다. 당시 그의 직책은 전문위원. 당시만 해도 변호사는 아니었다.

회사에선 “변호사가 되는 게 어떠냐”며 관련 학비 일체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회사의 지원으로 러시아의 대학원에 진학했고, 변호사 과정을 마쳤다. 러시아 변호사로 변신한 뒤부터는 러시아와 옛 소련 국가에 관한 사건 변호와 자문 등을 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직장문화는 녹록지 않았다. 러시아와는 달리 연차를 14일밖에 쓸 수 없고, 길게 붙여 쓰기보다는 조금씩 나눠 써야 했다. 그는 “러시아의 경우 기본으로 연차 18일을 주고, 근무연수가 쌓일수록 연차가 계속 늘어난다”며 “러시아에 계신 아버지는 퇴직하기 직전 연차가 60일이나 됐다”고 말했다.

레투놉 변호사가 한국의 직장에 적응하고, 끊임없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도전정신 때문이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당연히 있었고, 적응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젊을 때 여러 일도 해보고 싶고 도전도 해보고 싶었다”며 웃었다.


“한국에 이민자 많아질 것”

레투놉 변호사가 일하는 법무법인에도 러시아뿐만 아니라 독일 페루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자신처럼 한국에서 취직해 일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국과 러시아만 보더라도 앞으로 가스, 석유 등 각종 경제교류가 늘어날 거예요. 미국이나 유럽연합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에서도 전망이 보이면 외국인을 더 많이 채용하겠죠”

그는 “이민자들이 한국어만 잘 배운다면 의사표현도 할 수 있고, 각종 오해도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에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다”며 언어 구사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언어만 잘한다면 모스크바에서 독일까지 걸어서도 갈 수 있다’는 러시아 속담도 소개했다.

낯선 땅에서 생활한 지 어언 16년. 향수병으로 고생한 적은 없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건 한국 부모들이 아이를 비닐하우스처럼 따뜻한 환경에서 키우기 때문”이라며 말했다.

“많은 한국 부모가 애들이 공부만 잘하면 된다며 설거지며 청소며 다 해줍니다. 하지만 아이 성격이 발전하려면 혼자서 뭔가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해요. 교육이 핵심입니다. 외국인과 성격이 안 맞는데 어떻게 하냐고요? 차이점을 극복할 수 있게 배짱을 길러줘야 해요.”

그의 자녀들이 다니는 유치원에는 인도 호주 이란 일본 미국 등에서 온 부모를 둔 다양한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레투놉 변호사는 “우리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공부보다는 다양한 문화와 친숙해지고, 다양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이민자들

많은 사람이 ‘다문화’라는 말을 들으면 동남아 출신의 결혼이민자를 떠올리지만 다문화사회로 진입해가는 한국에는 다양한 이민자가 정착해 있다. 파키스탄 출신 무다사르 알리 대표이사(왼쪽 사진)와 러시아 출신 드미트리 레투놉 변호사도 그 구성원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일자리도 만들고, 경제에도 당당히 기여하는 이민자도 많다. 2006년 이민 온 파키스탄 출신 무다사르 알리 ACM 대표이사(31)는 인천에서 연간 30억∼40억 원 규모의 중장비 수출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중장비를 사들인 뒤 파키스탄 등 외국으로 수출하는 사업이다. 한국인 직원도 3명을 고용했다.

알리 대표이사는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정보기술(IT)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그의 형(44)은 한국에서 중장비 수출을 하고 있었다. 2000년대 한국의 건설회사들이 파키스탄의 건물과 도로 공사를 도맡아 하면서, 한국 중장비도 인기가 높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5만 달러를 한국에 투자한 뒤 기업투자(D-8) 비자를 받고 들어와 법인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한국어를 할 줄 몰라 영어로 거래를 했다. 장비를 사면 서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수출할 때 세금은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등을 일일이 한국인들에게 문의했다. 그는 “이곳에서 사업도 잘되고 있고 한국이 너무 좋아서 평생 살고 싶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어도 배우고 한국 법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알리 대표이사는 경기 부천시의 경기글로벌센터에 찾아가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민자에게 한국어와 경제 사회 법률 등을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2년간 매주 센터를 찾아가 공부했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됐다.

그는 한국은 이민을 생각하는 외국인들에게 ‘기회의 땅’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엔 사업 아이템이 엄청 많아요. 중장비뿐만 아니라 중고차, 휴대전화, 옷, 화장품 등 무궁무진하죠. 한국에 파키스탄 기업가 모임이 있는데, 회원이 230명이나 됩니다.”  


▼ 전문가 “다문화=결혼이민 인식… 또 다른 편견 우려” ▼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이민자나 귀화자가 포함된 가족을 ‘다문화(多文化)가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다문화는 문화 다양성을 뜻하는 말이지 이민자를 지칭하는 건 아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이민자 가족을 다문화가족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며 “번거롭더라도 용어는 정확하게 써야 하는데, 잘못된 용어가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사자들도 해당 명칭이 거북하긴 마찬가지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은 “내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고 아빠도 한국 사람인 데다 모국어도 한국어이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있다”며 “제발 다문화 학생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한국에서 태어난 국제결혼자녀와 외국에서 태어난 뒤 한국에 온 외국인 아이를 한데 묶어 ‘다문화 학생’으로 분류한다.

잘못된 명칭은 사소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큰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본래 문화 다양성을 뜻했던 다문화라는 말이 특정 가족 형태를 지칭하는 데 쓰이면서, 어느새 주로 아시아계 결혼이민자의 가족을 비하하는 수식어로 변질돼왔기 때문이다.

김영란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소수집단에 자꾸 어떤 명칭을 붙여 범주화하면 고정관념과 편견이 생기고, 그게 결국 차별행위로 이어진다”며 “다문화가족이란 말을 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주민가족을 특정 단어로 미화해 부르기보다는 정확한 용어를 쓰는 게 좋다고 말한다. 정기선 IOM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현상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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