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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가정 폭력에 멍드는 결혼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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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759회 작성일 13-07-1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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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가정 폭력에 멍드는 결혼이주여성

[중앙일보] 입력 2013.07.09 00:30 / 수정 2013.07.09 00:30

박재영 아산경찰서 정보보안과장


지난 5월, 얼굴과 팔이며 여기저기 상처가 안쓰러워 보이는 30대 초반의 베트남 여성이 경찰서를 찾았다. 7년의 결혼생활 내내 서른살 연상인 한국인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고 하소연했다. 불안함에 몸을 떨고 눈물을 흘리며 꺼낸 다음 말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술을 마시면 이어지는 남편의 이유 없는 구타에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성적 노리개로 팔려왔다는 비참함에 자살하고 싶다고 절망했다.

 며칠 후 한국인 남편이 구속됐다는 소식이 입소문을 타자 외국인 여성들의 피해 신고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딸기잼 병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린 베트남 여성, 남편이 휘두르는 회칼을 피해 도망 나온 일본인 주부, 허리띠 버클에 머리를 맞아 바늘로 꿰맨 중국인 여성 등 피해자의 국적만큼이나 그 내용도 다양했다. 한 피해여성은 ‘대한민국 경찰은 한국사람인 남편의 편을 들어 사건을 처리한다’는 막연한 불신에 신고를 주저했는데 한국인인 가해 남편이 구속됐다는 소식에 용기를 냈다고 고백했다.

 “한국에 처음 오니 아는 사람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마치 금방 낳은 신생아처럼 옹알이를 하기도 하고 인생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낯설기도, 무섭기도 해서 베트남에 있는 부모님을 항상 그리워했습니다.”

 
박재영 아산경찰서 정보보안과장
얼마 전 ‘다문화가족 부부의 날 행사’에서 결혼이주여성이 낭독한 편지의 일부분이다. ‘신생아’라는 표현에 잠시 생각이 멈췄다. 낯선 땅, 낯선 환경,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얼굴 몇 번 보고 결혼한 한국인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은 부모의 보살핌에 생존을 맡긴 신생아와 같은 처지라는 공감이 갔다. 다문화가정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은 일반적인 가정폭력보다 특별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우리말과 문화에 서툰 결혼이주여성은 우리 공동체가 보호해야 할 ‘사회적 신생아’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보호자인 한국인 남편이 ‘사회적 신생아’인 외국인 아내를 폭행하는 비열한 행위는 더욱 비난 받아 마땅하다.

 경찰청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신생아’를 위한 맞춤형 보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2009년 전국 최초로 10개국 24명의 결혼이주여성으로 ‘외국인 치안봉사단’을 결성한 아산경찰서를 우수 시범운영관서로 지정해 전국 확대 시행 가능성을 점검하고 있다. 아산경찰서에는 2600여명 결혼이주여성의 가정폭력 위험도를 삼색 신호등에 착안해 Red(위험)>Yellow(관심)>Green(안전)으로 분류하고, 이중 고위험 가정은 자국민인 외국인 치안봉사단원과 경찰관이 1대 1로 집중 보호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가정폭력의 예방과 피해 여성의 심리 치료, 생활 안정 지원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도 구성했다. 경찰에 대한 신뢰 회복이 가정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중요한 치안 인프라라는 확신을 실행에 옮기면서, 경찰의 진정성이 조금 더 빠른 속도로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재영 아산경찰서 정보보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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